키노라이츠

더 위치

The Witch

85.96%
90% ·
- ·
3.6



지금 여기서 감상

작품 정보

줄거리 : 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 중 한 가족은 적막한 뉴잉글랜드의 숲으로 밀려난다. 가족이 마녀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비극이 시작된다.

1분 정보 : 세일럼 마녀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데뷔작으로 그녀를 호러퀸으로 만든 작품이다. 제3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예고편


감독/출연

로버트 에거스
로버트 에거스
감독
안야 테일러 조이
안야 테일러 조이
토마신
랄프 이네슨
랄프 이네슨
윌리엄
케이트 딕키
케이트 딕키
캐서린
하비 스크림쇼
칼렙
루카스 도슨
조나스
엘리 그레인저

키노라이츠 지수

별로예요 14% 좋아요 86%

모든 리뷰
·4.0
'더 위치' - 공포의 또 다른 얼굴

인간의 눈과 뇌에는 '편집' 기능이 없다. 이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영화는 편집을 한다. 화면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리듬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해 사건에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에서 편집은 영화 속 인물의 현재 심경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객을 영화 속 인물과 동일시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편집은 현장 연출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영화들은 빠른 템포로 만들어진다. 이는 관객에게 '긴장'이라는 감각을 심어주기 위해 빠른 리듬감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게 하기 위해서다. 편집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강조됐다. 서스펜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빠른 편집과 반복되는 음악은 관객에게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준다(물론 이것이 해소된 다음에 얻게 될 카타르시스를 노린 계산이다).

그런데 최근 몇 편의 공포영화들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앞에 반기를 드는 느낌이다. 이들은 편집과 음악의 리듬으로 공포를 주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의 공포를 선사한다. 이 공포는 느리고 정적이다. 이 리듬감은 때로 지루하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그런데 느린 공포의 감각이야말로 인간의 시청각에 가장 근접한 상태다. 앞서 말한대로 인간의 눈에는 편집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느린 리듬의 공포영화들은 휘발성이 강하고 말초적인 공포가 아니라 근원적이고 오래 남는다. 이는 '공포'의 실체에 도달하면서 그렇게 얻어진 감각을 뇌리에 깊게 새겨둔다는 의미다. 느린 공포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다. 그저 이야기를 쫓아가는데 충실한 이 영화는 소설책을 읽듯이 따라가다가 덜컥 공포를 안겨준다. 이야기를 다 읽고 봐야 무서운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포는 대단히 깊게 뇌리에 박힌다. 여기서 감독은 영화에 연출적 기교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공포가 더 깊게 전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중 꽤 알기 쉬운 것은 데이빗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다 저 멀리서 기괴한 존재가 자신을 향해 걸어온다. 영화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관객들은 지금쯤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시선은 도망치지 않는다. 관객은 그때쯤 조바심이 생긴다. 마치 관객을 결박한 듯한 이 긴장감은 느린 가운데 생기고 느려야지 더 배가된다. 아마도 '팔로우'는 내가 본 중 '가장 느린 공포영화'가 될 것이다. 가장 최근작인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 역시 빠른 템포를 보여주진 않는다. '유전'은 '팔로우'와 마찬가지로 멍하게 바라보는 풍경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공포를 배가시키는 대신 때에 따라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는 영화 자체가 미니어쳐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 인물들을 미니어쳐화 시키면서 관객들 역시 미니어처에 갇힌 듯한 공포를 준다. 영화가 눈에 근접한 연출을 하면서 관객을 영화 안으로 밀어넣은 셈이다.

개봉한지 꽤 지났지만 이제서야 본 영화 로버트 에거스의 '더 위치'는 이들 '느린 공포영화'와 결을 같이 한다. 흐릿하고 어두운 풍경 가운데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광경은 이상한 불안감을 준다. 이 영화는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느 공포영화에서 본 익숙한 '가족'의 유대감은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다. 귀여운 쌍둥이 동생들은 불쾌한 꼬마들로 묘사되고 엄마(케이트 딕키)는 히스테릭한 광신도, 아빠(랄프 이네슨)는 무능한 맹수처럼 보인다. 꽤 믿을만한 장남 케일럽(하비 스크림쇼)도 누나 토마신(안야 테일러 조이)에게 음흉한 시선을 보낸다. 관객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영화 전반부를 차지한 이 가족의 균열이다. 이 균열은 사무엘이 실종되면서 극대화된다. 이것은 유일하게 균열에 기인하지 않는 구성원인 사무엘을 제거한 마녀가 균열의 틈새로 파고들기 위한 수작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체험하도록 유도한 것은 이 가족의 '불안'이다. 이것은 서스펜스와 다른 의미다. 예를 들어 '서스펜스'는 똥이 마려운 가운데 화장실을 찾아 뛰어가는 순간이고 '불안'은 똥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안은 별 다른 편집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불안한 것은 불안하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어도 똥이 마려운 긴장감은 변하지 않는다. '더 위치'는 가족의 불안으로 관객을 붙잡아두다가 기어이 붕괴시키면서 공포를 준다. 사실 이 대목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에게 일부 빚을 지고 있다.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샤워실 살인장면, 이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 침입을 당하기 때문이다. 공포는 가장 사적인 것이 침입을 당할 때 더욱 커진다. 가족은 공동체를 이루는 가장 최소한의 단위다. 그리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긴밀한 공동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만 살펴봐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는데 가족은 끈끈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더 위치'는 그 단위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더 위치'는 편집의 기교를 부리진 않지만 조명과 음악에서는 굉장한 기교를 부린다. 음악은 길게 늘어지고 현악기의 선율을 불편하게 상승시켜 감정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조명은 익숙한 것조차 낯설어 보이게 한다. 특히 조명을 쓰는 방법은 가히 예술적이다. 토마신이 마녀의 연회장에 도착해 하늘로 상승하는 장면에서 조명은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 이는 익숙한 공포효과를 넘어서 극단적인 대비 효과도 준다. 이를 통해 얼굴의 윤곽은 기이한 형태를 띈다. 흡사 그것은 짐승의 두개골과 닮았다. 케일럽이 마녀와 처음 마주한 장면에서도 수직으로 떨어지는 조명은 눈동자를 감추며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밖에도 많은 장면에서 자연광을 주로 쓰고 조명의 위치는 입체적이지 않다. 이는 빛이 귀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어둠을 강조해 분위기를 위축시키려는 점도 있다. 그리고 영화가 뒤로 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진다. 마치 마녀가 잠식한 가족을 보여주려는 모양새다.

'더 위치'는 서스펜스에 집중하지 않는다. 촬영과 조명, 음악은 단조로운 가운데 익숙하지 않은 균열을 내면서 불안을 조장한다. 그리고 불안이 극대화되는 지점에서 관객이 느끼는 공포도 커지기 마련이다. '더 위치'는 히치콕의 '서스펜스 기술'이 일상화된 시점에서 그보다 더 진화되고 근원적인 공포를 주는데 집중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몇 개의 공포영화들에서 드러난 경향이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금방 휘발되는 공포를 선호할 수 있고 더 근원적이고 깊게 새겨지는 공포를 원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공포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영화는 수많은 장르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독일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해 100년 가까이 진화하며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 어쩌면 '더 위치'는 공포영화의 진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먼 풍경이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만유인력의 법칙 못지 않은 발견이다.


3개0개

·3.0

15세기에 시작돼 16~17세기 절정에 이른 유럽 사회의 마녀사냥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기독교 사회는 종교 권력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이교도와 종교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종교인들은 세상에 악마가 존재하며 그들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마녀가 있다는 걸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수세기에 걸쳐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라 낙인찍고 사형을 집행했다. 마녀사냥이 통했던 이유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대였고 그 현상의 원인을 모두 마녀에게 돌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녀가 되는 대상은 혼자 사는 노파부터 마을의 건실한 청년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모함만 당하면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었다.


1692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있었던 살렘 마녀재판을 소재로 한 <더 위치>는 가장 따뜻하고 서로를 신뢰해야 될 가족 사이의 마녀 사냥을 다룬 작품이다. 17세기 중반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청교도 마을에 살았던 윌리엄은 종교적 이견 때문에 가족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들은 숲속에 자리를 잡고 그 땅을 개간하고자 한다. 가축을 기르고 옥수수를 심지만 마을에서의 풍족한 생활에 비하면 턱 없이 곤궁해진 윌리엄 가족. 그러던 어느 날 딸 토마신은 눈 가리고 까꿍 놀이를 하던 아기가 눈을 감은 사이 사라지자 당황한다.

아기가 숲의 악마에게 끌려갔을 것이라 여기는 가족들. 그리고 그때부터 윌리엄 가족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아들 케일럽은 누나 토마신에게 성적인 욕망을 품는다. 어린 머시와 조나스는 토마신이 악마에게 아기를 바쳤다고 말하고 염소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을 나무라는 머시에게 화가 난 토마신은 장난으로 자신은 악마라며 머시에게 겁을 준다. 하지만 이 행동은 곧 토마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윌리엄은 입을 줄이기 위해 토마신을 마을에 하녀로 보내고자 한다. 토마신은 케일럽과 함께 숲을 건너던 중 흥분한 말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케일럽은 사라진다. 돌아온 케일럽은 마치 악마가 씌인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리고 머시는 토마신이 스스로 악마라고 고백했다는 말을 한다.

이 작품의 공포는 가족이 가족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부모는 딸 토마신이 마녀일 것이라 생각한다. 토마신의 저주 때문에 케일럽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게 부모의 추측이다. 이 추측의 근거는 과거에서 시작된다. 토마신이 아기를 잃어버렸던 그 순간을 부모는 잊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토마신은 이 추악한 믿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들을 팔아넘긴다. 기독교에서 염소는 악마의 동물로 여긴다. 토마신은 염소와 대화를 나누는 동생들이 마녀라고 주장한다.

<더 위치>는 가족 사이의 의심을 통한 공포를 야기한다. 가족들은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범인으로 서로를 지목한다. 그들 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작품이 무서운 이유는 이런 가족의 붕괴가 케일럽의 병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상의 중심에는 원인이 있다. 이들 가족 공동체의 붕괴의 원인은 경제적 빈곤에 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마을을 떠났고 그 이후 가족들은 모두 열심히 일은 하지만 배부르게 살 수 없는 빈곤에 시달린다.

가부장제 사회였던 중세에서 가장이 제대로 가정을 이끌지 못한다는 건 그 가정의 붕괴를 의미한다. 아버지 윌리엄의 선택은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를 탓하거나 미워할 수 없기에 그들은 다른 범인을 찾게 된다. 그 범인을 만들어준 현상이 아기의 실종과 케일럽의 병이다.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는 가족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범인으로 몰린 토마신을 더욱 몰아세운다. <더 위치>는 마녀사냥의 본질을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 찾는다.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를 담아낸 이 작품은 가장 따뜻하고 믿음을 주어야 될 가족 사이의 의심과 붕괴를 통해 심리적으로 강한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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