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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The Book of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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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지금 여기서 감상

작품 정보

줄거리 : 순조 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은 바다생물에 매료되어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받아 책을 쓰기로 한다. 정약전과 창대는 서로 가까워지지만 각자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멀어지기 시작한다.

1분 정보 :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대상 수상작. <변산>의 각본을 쓴 김세겸이 각본을 맡았다. 이준익 감독의 두 번째 흑백 영화다. (첫 번째는 <동주>다.)

예고편


감독/출연

이준익
이준익
감독
설경구
설경구
정약전
변요한
변요한
창대
이정은
이정은
가거댁
도희
도희
복례
차순배
차순배
풍헌
강기영
강기영
이강회

키노라이츠 지수

별로예요 3% 좋아요 97%

모든 리뷰
·3.5
지식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0. 영화글을 쓰면서 반드시 감독의 의도를 존중할 필요는 없다. 영화를 이해하는 행위는 감독과 관객의 퀴즈쇼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며 글을 쓴 지는 아주 오래됐다. 그러나 감독이 공식적으로 "그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조금 당혹스럽다. 2018년 6월에 나는 영화 '변산'을 본 후 이준익 감독이 최근 만든 세 편의 영화가 '시와 청춘의 3부작'이라고 글을 썼다(https://daishiromance.tistory.com/971). 그러나 이준익 감독은 2021년 3월 18일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자산어보' GV에서 "그냥 마케팅팀이 그렇게 이름 붙인거임. 그걸 의도하고 만들진 않았음"이라고 답했다. 2018년에 썼던 내 글에 대한 감독의 공식적인 반박이다. 때문에 '자산어보'에 대한 글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GV를 안 본 셈 치자"였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세상에 내놓으면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이준익 감독이 감독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나는 관객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 만약 이준익 감독도 이 글을 읽는다면 "내 영화가 이렇게도 해석된다고?"라며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1.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 선생이 저술한 동명의 책 서문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책에 등장하는 창대(변요한)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창대와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산어보'는 '동주'와 '박열', '변산' 이후에 나온 영화인 만큼 전작의 흔적에 취해 볼 수 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에도 청년이 등장하고 시를 읊는다. 그러나 그 쓰임새는 이전과 다르다. '동주'와 '박열', '변산'의 경우 청년이 등장하고 시를 읽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앞선 영화의 주인공들은 청춘임을 온전히 드러냈고 시를 통해 생각을 전달했다. 그들에 드러낸 생각은 부조리하고 꽉 막힌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청춘은 그들이 선 자리였고 시는 저항의 도구였다. 그래서 '동주', '박열', '변산'은 사실상 '저항의 3부작'이라고 정의내려도 좋다. '자산어보'에서 청춘인 창대는 체제에 저항하는 대신 체제 속으로 흡수되려 한다. 그가 시를 읊는 장면 역시 저항의 도구가 아니라 체제 속에 흡수되려는 의도다(창대의 마지막 장면은 '저항'이라기 보다는 '깽판'에 가깝다).

2. '자산어보'에서 저항하는 사람은 창대가 아닌 약전이다. 그는 임금이 있고 양반과 천민의 계급이 존재하는 조선시대 그 자체에 저항했다. 천주교와 예수가 보여준 가치관은 시대에 저항해 얻고자 하는 이상향이었다. 약전이 깨달은 이상적 세계는 절대자 예수 아래에 왕과 양반, 천민 모두가 평등한 계급이 되는 사회다. 천주교를 통해 그런 세계를 알게 됐고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고 싶었지만 성리학이 근간이 된 사회에서는 박해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흑산도로 유배된 그는 자신이 그린 이상적 세계를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이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창대를 만나면서 약전은 자신이 그린 이상적 세계를 직접 보게 됐다. 바다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창대와 함께 '자산어보'를 만들면서 누구나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지식이 권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만약 실제 저술의도도 이와 같았다면 정약전은 미셸 푸코보다 100년 먼저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정의내린 것이다.

3. '자산어보'라는 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 누가 보게 될까? 한양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대부들? 그들에게 해양생물에 대한 지식은 하찮게 여겨질 수 있다. 창대의 생각처럼 인간사의 근간이나 깨달음을 적은 책만이 가치가 있는 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전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가치가 있고 그런 지식을 가진 자가 스승이라고 여겼다. 그에게는 지식을 가진자가 곧 스승이고 권력자다. 정약전과 미셸 푸코가 이렇게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계급사회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권력을 나눠주는 일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역시 그런 의도로 창제됐다. 정약전의 창대의 해박한 지식에서 느낀 가치는 모두가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지식은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약전 사후 200여년(미셸 푸코 사후 37년)이 흘렀는데 권력은 지식을 따라 흐르고 있는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현대사회의 권력은 자본을 따라 흐른다.

4. '자산어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준익 영화를 관통하는 더 중요한 흐름이다('시와 청춘'보다 더 넓은 세계관을 아우르고 있다). 그의 영화는 항상 관계의 최소 단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르영화에서는 흔히 '버디무비'라고 부르는데 이준익 감독은 가장 보편적인 형사버디무비의 원초적 재미보다 더 깊이 들어간다. '황산벌'과 '평양성'에서는 적으로 만난 두 남자의 주고 받는 관계를 통해 상호보완한다. '라디오스타'는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스타와 매니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동주'의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 '박열'의 박열(이제훈)과 후미코(최희서)도 상호보완적 관계다. '사도'에서 영조(송강호)와 사도세자(유아인)의 관계는 상호보완되지 않았다. 부자 간의 정을 원했던 사도세자와 왕의 위치를 지켜야 했던 영조의 관계는 어긋나 있었다. '자산어보'의 약전과 창대도 상호보완적 관계다. 관계의 최소 단위는 개인과 개인이 마주보면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것은 상호발전적 관계에 이르기 마련이다. 가느다란 한가닥 줄 위에 선 두 사내는 한 사람이 줄을 튕겨야 다른 사람이 솟아오를 수 있다. 이는 혼자서 튀어오르는 것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다. 매니저가 없이 활동하는 스타도 많이 있다. 그러나 매니저가 있다면 스타는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관계에 대한 이준익 감독 영화들의 태도는 '가르침'의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껏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며 살 수 있었던 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을 통해 나를 보완해왔기 때문이다(이 같은 맥락에서 벗어난 몇 개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준익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이기 때문이다).

5. 결론: 이준익 감독은 스스로를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소개했지만 정작 영화들에서는 상업적 욕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준익 감독을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하는 게 맞다. 많은 관객들이 이준익 감독 영화에서 극찬하는 지점이 '탄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잠시 간과했던 지점을 상기시키자. 이준익 감독은 (꽤 성공한) 영화제작자 출신이다. 어느 영화감독보다 영화를 합리적으로 찍을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산어보'는 (본인 정의로) '상업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합리적인 지점이 많은 영화다. ...재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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